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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2023 KOREA 50K 트레일 러닝 대회

완주 메달과 살로몬 자켓

첫 트레일 러닝 대회 KOREA 50K에 참가하여 완주를 했다. 몇 달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왔던 대회였지만, 설렘은 레이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걱정으로 바뀌었다. 정신 없이 펼쳤던 레이스를 마치고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부분을 짧게나마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레이스 대열 후미에서 레이스를 시작했다. 도로를 지나 등산로로 접어든 순간부터는 좁아진 길로 인해 병목이 일어났다.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숲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CP 1까지 앞선 주자를 추월하며 빠르게 나아갔다.

CP 1에서는 가볍게 목만 축이고 다시 CP2를 향해 달렸다. 거센 비와 강풍 때문에 몸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고 허기짐을 느꼈다. 특히 트레일 러닝에서는 허기짐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하게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게 중요한데, 레이스 경험이 부족한 데다가 날씨도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 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CP 2에 도착해서 삼각김밥과 바나나로 허기짐을 달래고 출발했다. CP 2에서는 혁민 님을 먼저 보냈다. 함께 목표한 기록이 있었지만, 나는 혁민 님을 쫓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업힐 구간이 시작되었는데 쏟아지는 비와 강풍으로 체온은 점점 떨어졌고 구비한 에너지 젤은 먹는 족족 소화되었다. 심박수도 급격히 저하되며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

목표 기록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지우고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CP 3에 도착했다. CP 3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몸에 힘이 풀렸고 저체온증이 온 것 같아서 서바이벌 블랭킷을 뜯었다. 서바이벌 블랭킷을 뒤집어쓴 채로, 한참을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하며 나아갔다. 비가 많이 온 터라, 흙이 진흙으로 바뀌어서 수도 없이 넘어졌다.

추위에 입술은 떨리고 어지럽기도 해서 완주에 대한 확신마저도 저버렸지만 포기하면 아쉬움이 강하게 남을 것만 같았다. 조금은 무리하게 레이스를 이어갔고 어느덧 CP 4를 지나 피니시 라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KOREA 50K 완주 기록증

느낀 점:

1. 다운힐을 내려가던 중, 작은 돌멩이가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피해 갔다. 내려오면서 작은 돌멩이가 계속 생각났다. 누구라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반대로 그 찰나의 순간에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에게 위험을 알려줬을 것이다. 돌멩이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부터 위험하다 생각되면 옆으로 옮겨 놓았지만, 그 전에 급박한 순간일지라도 주변을 챙길 수 있는 아량을 넓히자.

2. 자연에는 정도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게 자연 환경이다. 이번 대회 필수 장비 품목 중에서 무게만 차지하는 건 아닌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는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그에 맞춰 모든 준비를 해야 함을 느꼈다. 그 대상이 자연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3. 업힐 구간마다 너무 힘들었다. 코어와 하체 근력이 많이 약해서 하체 위주로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4.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자.

5. 앞으로 폴은 꼭 지참해야겠다. 업힐을 올라갈 때 많이 힘들었다.

6. 내 몸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키우자. 에너지 젤을 어느 지점에서 먹을 것인지, 먹고 나면 몸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등 평소에도 음식을 먹었을 때 몸의 변화에 집중하고 컨트롤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신경 써 보자.

7. Miles Don't Lie. 마일리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8. 여유는 온전히 즐거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힘든 순간에 미소를 짓는 분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9. 차분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자.

10. 마일리지를 천천히 잘 쌓아서, 100km에 도전할 수 있는 몸을 만들자.

Miles Don't Lie 출처: @goodvibes_tc
KOREA 50K START & FINISH ZONE

 

출발 직전의 모습
병목 구간과 혁민님
CP3(34.5KM)로 향하는 임도: 깊이울 저수지
CP4(46KM)로 향하는 임도
배번과 완주 메달: 앞으로 클리어 파일을 구매해서 모두 보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