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닝

2023 SEOUL 100K,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 100km 부문 참가 후기

준비하며

올해의 목표였던 SEOUL 100K 대회에 참가하여 무사히 완주했다. 지난 4월에 처음 참가한 트레일 러닝 대회 KOREA 50K를 완주한 이후 막연하게 100km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대회의 완주가 목표였으나, 호기롭게 참가했던 지난 50km 대회에서 처절하게 쓴맛을 봤는데. 두 배가량이 되는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그저 참가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제주도 한라산을 달리는 UTMB 트랜스 제주와 서울의 산을 달리는 SEOUL 100K 대회 중, 제주도를 달리고 싶었지만 일이 한창 바빠질 시기였기 때문에 서울에서 열리는 SEOUL 100K에 참가하기로 했다. 종종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서 참가자 모집을 시작했는지 확인하였고 7월에는 참가 신청을 완료하였다.

덜컥 신청했나. 현재 나의 여건에서 조금은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름의 목표로 세운만큼 주어진 상황 안에서 조금씩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통근 시간. 바쁜 시기에는 끝도 없이 몰리는 일. 피곤함보다는 먼 거리로 인해 운동과 개인적으로 할애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웠다. 그럼에도 당장 환경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야금야금 조금씩 준비해 나갔다.

먼저 부족한 근력을 키우고 웨이트 트레이닝 자세를 배우기 위해 PT를 등록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하고 곧장 헬스장으로 향하여 10시에 수업을 받았다. 수업 이후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기적으로 달렸다. 운동의 효율을 위해서는 평소보다 달리는 시간을 줄여야 했지만, 대회에도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최대한 밸런스를 맞춰가며 병행했다. 점점 바빠지는 일로 인해 어긋나는 운동 스케줄, 식사, 회복 등 계획대로 되는 게 없었지만 누굴 탓하리오. 본인이 만든 상황이니 그저 마음을 다할 뿐이었다.

01234

주말에는 시간이 맞을 땐 혁민 님과 러닝을 하고 주로 혼자 사패산을 달렸다. 50km 대회에서 힘겹던 업힐의 기억 때문인지 하체의 지근보다는 속근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패산의 초입부터 정상까지의 달리는 시간을 체크하며 조금씩 시간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훈련 아닌 훈련을 했는데, 작지만 의미 있는 도움을 준 것 같다. 이 외에는 밥을 더 먹고,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더 잤다. 

레이스 시작 전, 서울 시청 광장에 모인 참가자들

레이스 데이

오전 1시 30분에 일어나서 테이핑을 하고, 떡국을 먹었다. 쏘카를 이용해 패스트파이브 시청점에 주차한 후, 서울 시청 광장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스타트 시각이 이른 아침인 만큼 꽤 쌀쌀했다. 덤덤하게 대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처럼 혼자 참가한 사람들.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 숱한 대회 참가 경험이 느껴지는 멋진 어르신들. 함께 달리는 연인들.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인들. 제각기 다른 일상을 보내고 이른 새벽부터 대회를 참가를 위해 이곳에 모였다. 잠깐 여러 생각에 잠겼지만,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며 레이스를 시작했다.

초반 인왕산 코스는 익숙한 곳이어서 여유롭게 통과했다.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켜 가며 레이스를 이어가는데, 비가 내리더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50km 대회에서 저체온증으로 고생했던 터라, 대회 중에 내리는 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빗방울은 거센 빗줄기로 바뀌어서는 온몸을 젖게 만들었다. 당황한 마음을 달래려고 에어팟을 꺼내 신나는 음악을 틀고서는 연달아 시리에게 오늘 날씨를 물어봤다. 시리가 알려주는 날씨는 내내 맑음이었지만 빗줄기의 기세는 하루 종일 꺾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른 대회에서 만나 뵙게 되면 다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내 앞에는 연륜이 느껴지는 참가자분께서 묵묵히 달리고 계셨다. 날씨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나누고 짧은 첨언을 더해주셨다. 홀로 뛰어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수많은 대회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일상과 취미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긴 세월에 걸쳐 그 사이의 간극을 잘 유지하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가셨던 걸까. 고요하지만 다채롭게 레이스를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달리고 있다면 혹 어르신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거센 빗줄기는 그쳤고 마치 비가 온 적이 없던 것처럼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0123

본격적으로 북한산을 오르기 전에 CP 3에서 10분 정도 휴식하며 국밥, 빵과 수프를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다. 나트륨을 채우기 위해 국물까지 다 먹었다. CP 3에서 CP 4까지는 북한산 영봉을 찍고 내려오는 코스로 세 번의 강력한 업힐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라고 생각한다. 남은 거리와 고도를 확인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에어팟을 꺼내서 김오키의 노래를 들었다. 대회 중에는 힘들어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기 힘들다. 그렇지만 의식해서 가을 단풍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잠깐 멈춰서서 김오키의 노래 속에 수많은 등산객을 구경했다. 따스한 가을볕,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 시원한 바람이 불어 적당히 식은땀.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는 확실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012

CP 4에 도착했다. 달리는 중에는 앞서 계시던 분들이 어느 순간 뒤에 계시기도 하고, 반대로 뒤에 계시던 분들이 앞서가시는 경우가 많다. 빠른 속도로 앞서가시는 분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힘이 남아 있는 걸까 하고 감탄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각자의 의미를 지닌 채로 달리는 사람들. 아직 절반도 채 오지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무언의 힘을 얻고 CP 5를 향해 나아갔다.
 
CP 5 국립공원 산악 박물관은 드롭백이 있는 지점이다. 레이스전에 드롭백에 필요한 물품을 넣으면 주최 측에서 이 지점에서 드롭백을 전해 준다. 드롭백에는 샤워 타올, 여분의 양말과 신발, 보조 배터리를 넣어 두었다. 샤워 타월로 땀에 젖은 몸을 닦고 양말을 갈아 신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삼촌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북한산에 등산을 오셨다가 가족 단톡방에서 내 소식을 듣고 오신 모양이다. 큰 힘이 되었다. 삼촌과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눈 후에 컵라면을 먹고 요깃거리를 잔뜩 챙겨 출발했다.

012

불암산을 향해 달리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당황했다. 날은 금세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졌고, 짙은 땅거미가 산에 내려앉았다. 초행길에 야간 산행 경험이 없던 터라,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절반이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산속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다른 주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곧이어 동행 중이신 두 분이 보였다. 두 분께 함께 동행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였고 흔쾌히 응해주셨다. 동행 중 한 분은 CP 5 지점부터 친구분의 무사 완주를 위해 서포트를 해주고 계신 거라고 한다. 어둠 속에서도 모든 코스를 꿰뚫고 계셨고, 경험이 상당히 많아 보이셨다.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평소에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멋진 크루에 속해 계셨던 분들이었다. 내적 친밀감을 표했다. 그렇게 천둥새 크루분들과는 불암산부터 아차산 용마산까지 동행했다. 더 이상의 동행은 두 분의 레이스에 방해될 것 같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야간에 무사히 완주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무한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남은 20km 구간은 뚝섬을 지나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도로 구간이다. 산에서 내려와서 도로를 달리는 것쯤이야 가볍게 생각했지만,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20km라는 거리는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홀로 뛰는 도중에 지나가는 몇몇 분들께 응원을 받았다. 천둥새 크루원분들 같았다. 동료의 완주를 응원하고 축하해 주기 위해 일요일 이른 새벽부터 피곤함을 무릅쓰고 레이스 중인 동료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완주의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응원해 주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WP 지점에서 배터리가 부족해서 꺼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켰다. 머지않아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시청 광장에 도착해 계신다고 했다. 8km가량이 남아 있었는데 추운 새벽 날씨에 기다리실까 봐 전력을 다해 뛰었다. 호기롭게 30분 안에 도착한다고 얘기했는데 1시간을 기다리셨다.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부모님께 더 잘하자. 

시청 광장에 도착했다. 긴 레이스가 마침내 끝났다. 과정에서 일, 운동, 개인 시간 모두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게으른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어떤 일이든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는 데 주저하고, 일의 한 부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큰 자책과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힘을 빼고 그저 마음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지연된 완벽함보다 지속적인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대회를 준비하면서 몸소 체득할 수 있었다.

처음 도전했던 울트라 트레일 러닝은 고행과 같았다. 달리는 동안 땀을 흘리며 고통과 피로를 겪지만, 힘들게 달려온 길 위에 이를 헤치고 서면, 그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몸은 쉴 틈 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내면은 한없이 평화롭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고,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되새긴다. 어쩌면 그 어려운 순간들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회의 짧은 복기를 마친다.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달리자.

'러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KOREA 50K 트레일 러닝 대회  (0) 2023.05.01